Page 165 - 고경 - 2024년 8월호 Vol.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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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5. 옥룡사지 도선국사 부도탑과 부도탑비. 사진: 뉴스렙.
호 등은 동리산문을 혜철이 태안사에서 개산한 산문이라고 정의하고, 다
시 ‘혜철→여→윤다’의 ‘대안사계(파)’와 ‘혜철→도선→경보’의 ‘옥룡사계
(파)’로 나누기도 한다. 그러나 도선이 옥룡사에서 혜철의 선사상을 펼쳤는
지 아니면 풍수도참사상을 전수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도선의 사후 옥룡사는 견훤의 영향권 아래 있었다. 왕건이 적극적으로
도선의 비보사탑설을 강조한 데에는 후백제 민중들의 민심을 돌리기 위한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도 보인다. 고려시대 이후 왜곡과 조작으로 일관되
어 온 도선의 행적에 대한 기록과 설화들에서 그의 참다운 선사상을 캐내
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선사상의 측면에서 보면 혜철과 도선 그리고
도선과 경보 사이에는 분명 불연속의 지점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고려 현종은 도선을 대선사로 추증하였고, 숙종은 왕사로 또 인종은 선
각국사로 추증하였다. 이 같은 사실은 도선이 위대한 고승이었음을 말하
는 것이다. 따라서 도선이 주창한 풍수도참사상 또한 그가 깨달은 선의 경
지와 무관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화엄과 선사상에 밝았던 도선이 꿈꾸었
던 세상(풍수)은 병(육체적 정신적 병 모두) 없이 살아갈 수 있는 포근한 삶의
터전이었고, 그가 말한 명당은 불국토의 다른 이름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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