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3 - 고경 - 2024년 8월호 Vol.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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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났다고 한다. 물론 도선이 왕건의
아버지인 왕융을 정말로 만났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태조 왕
건이 도선의 풍수도참사상과 비보사탑
설을 신봉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943
년 박술희를 불러 전한 <훈요십조> 가
운데 제2조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
모든 사원들은 모두 도선의 의견에
의하여 산천의 순역順逆을 가려서 창
건한 것이다. 도선이 말하기를, “내가
사진 4. 도갑사 도선국사 진영. 전라남도 유
선정한 이외에 함부로 사원을 짓는 형문화재 176호.
다면 지덕地德을 훼손시켜 국운이 길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내
가 생각하건대, 후세의 국왕·공후·후비·대관들이 각기 원당願
堂이라는 명칭으로 더 많은 사원을 증축할 것이니, 이것이 크게 근
심되는 바이다. 신라 말기에 사원들을 야단스럽게 세워서 지덕을
훼손시켰고 결국은 나라가 멸망하였으니, 어찌 경계할 일이 아니
겠는가. 4)
892년(효공왕 2)에 도선이 열반에 들자 효공왕은 요공선사了空禪師라는 시
호를 내리고, 박인범朴仁範에게 명하여 비문을 짓게 하였으나, 끝내 돌에
새기지는 못했다. 이는 이 해에 견훤이 이 지역에 후백제를 세웠기 때문으
4) 이능화 편, 『역주 조선불교통사 1』(5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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