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1 - 고경 - 2024년 8월호 Vol.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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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그때는 강사가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루 종일 가르
쳤어요. 아침에 시작해서 10시
까지 가르치고 또 오후에 또 가
르치고, 그래서 전부 내 혼자서
했습니다. 그러다가 또 알게 된
도반이 하나 있어서 그이를 불
러서 같이 가르쳤습니다.
운문사를 떠나 초막같이
작은 절 봉녕사로 사진 5. 제2회 운문사 강원 졸업식에서 강사 묘엄스님.
둘째 줄 왼쪽 세 번째.
▶ 수원 봉녕사에 오신 경위를 말씀해 주십시오.
내가 여기 수원에 온 것은 1971년도입니다. 운문사에서 학인들을 4년간
가르친 얘기부터 하겠습니다. 우리는 비구 대처 정화운동에 참여했다가 비
구니가 첫 단계로 운문사로 들어갔거든요. 운문사에서 강단을 개설하고 생
각해 보니까 제가 한 서른다섯이나 여섯, 이러니 젊지 않습니까? 내가 이
스님들을 가르치는 것은 부처님 뜻을 이어받아 가르치는 것이지만, 내 개
인의 생각도 있지 않겠습니까? 중국의 조사님들이 부처님 당시와 같게 하
지 않고 현지에 맞게 불법을 폈듯이. 그렇게 하려면 내가 “참선을 해서 깨
친 바가 있어야 되겠다.” 싶어서 우리 사형님보고 “참선을 해야 하는데 맨
날 글자만 헤아리다가는 안 되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한동안 살
고는 운문사를 나왔습니다.
운문사를 나와서 울산 죽림정사라는 사찰이 있는데, 거기를 가니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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