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0 - 고경 - 2024년 9월호 Vol.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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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복사꽃을 한 번 본 후로

               이제부터 다시는 의심하지 않으리           2)



            언어로만 접근한다면 평생을 노력해도 제대로 알지 못할뿐더러 모두
          미쳐 버리고 말 것입니다. 나 역시 불이, 진아, 무념, 무심, 무아, 공空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가 머리가 쪼개질 것 같은 날이 더러 있었습
          니다. 생각의 집중력이 높아지면서 그 집중력이 내부를 향할 때 상당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고, 이를 선가에서는 흔히 상기증 上氣症 또는 선병禪
          病이라고 불렀습니다. 영운은 30년 동안이나 무명無明을 잘라낼 지혜의

          칼을 찾아 수행했지만 깨달음을 얻지 못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우리가 현재의 세계를 순전히 객관적으로 고찰하는 경지에 올라가면,

                                                            3)
          그 객관에 의해 모든 고뇌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영운은 복사
          꽃을 보다가 그렇게 자신의 개별성을 초월하여 순수 객관에 도달한 황

          홀경을 오도송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 깨달음은 세계를 긍정하는 것이
          며, 거짓된 이해를 제거함으로써 얻게 되는 최고의 행복감을 말합니다.

            지금도 봉은사, 송광사, 범어사, 환성사(하양), 은해사(영천), 개심사, 마

          곡사, 구룡사 등에 가면 심검당尋劍堂이란 당호가 붙은 건물이 있습니다.
          대체로 선원 아니면 강원이라 일반인의 출입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절집
          에 웬 칼劍이냐고 생각하겠지만, 심검당은 바로 영운의 오도송에서 따온

          것입니다. 영운의 오도송은 아직도 이처럼 우리 곁에 살아 있습니다.





          2)   『祖堂集』(952), 卷第十九, 靈雲和尚, “三十年來尋劍客 幾逢花發幾抽枝 自從一見桃花後 直至如
             今更不疑”
          3)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1818), 38. 미적 만족을 느끼는 주관적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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