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1 - 고경 - 2024년 9월호 Vol.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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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화재로 여러 가옥이 피해를 입자, 호조에서 와장瓦匠 승려를 우
선 선발하고, 또 이를 보좌하는 역할을 승려에게 맡기고, 그 승려들의
근무 정도에 따라 관직으로 상을 주자는 이야기다. 여기서 관직으로 상
을 준다는 것은 실제 업무가 있는 관직이 아니라 직무가 없는 산직散職이
었을 것이다. 이처럼 관직이 없는 일반 승려를 요역에 동원하고 상을 주
는 것은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관례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승려를 요
역에 동원하는 것을 배불정책으로 보기는 어렵다. 반면에 세종의 배불정
책으로 볼 수 있는 또 다른 조치는 내불당의 폐지라고 할 수 있다.
정조正朝·동지冬至·탄일誕日 삼대 조회朝會 때의 각 종파에서 보내
는 축하문을 없앴다. 이전에는 내불당內佛堂이 오교양종五敎兩宗을
거느리고 축하문을 받들고 조회에 참석하여 하례를 드렸는데, 지
금은 조회에 참석하는 것을 없앴기 때문이었다. - 『세종실록』 16년,
1434년 10월 30일.
내불당의 폐지
위의 기록만으로는 내불당의 폐지를 알 수 없다. 다만 내불당의 역할
가운데 정월 초하루, 동지, 임금 탄생일 때의 조회에 내불당의 승려가 참
석하는 것을 없앴다고만 하였다. 그런데 그로부터 15년이 지나서 내불당
을 복원한다는 기사가 보인다.
허후가 말하기를, “… 불법이 다시 일어날까 참으로 두렵습니다. 백
성이 내불당을 창건한다는 말을 들으면 뒤를 이어서 불당을 세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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