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8 - 고경 - 2024년 9월호 Vol.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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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자유와 평안의 지혜 길>이다.
제행무상·제행개고라는 말은 ‘행의 내용을 발생시키는 조건에 따라
구분되는 두 유형의 행’을 고려하여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불변·절대의
궁극실재’를 설정하지 않고 해탈·열반의 성취를 설하는 붓다 법설의 내
용과 부합한다. <‘불변하는 동일·독자의 것이 있다고 보는 무지’를 조건
삼는 의도 작용[行]은 그에 따른 형성이 모두 고통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모든 현상을 변화와 관계로 보는 지혜’를 조건 삼는 의도 작용[行]은 ‘사
실 그대로 아는 이해’를 일으켜 고통에서 벗어나게 한다.> - 이렇게 읽는
것이 중도의 길에 부합한다. 이어지는 글에서 자세히 거론한다.
교학 전통과 학계에서는 행(saṅkhāra)을 ‘의도적 형성’ ‘의도적 행위’ ‘업
의 형성’ ‘형성된 것’ 등으로 번역하면서 ‘의도’를 행의 핵심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니까야에서는 신체와 언어 그리고 인지와 관련된 작용이나
현상을 행行이라 부르는 경우도 있다. 호흡을 신행身行, ‘일으킨 생각’(尋,
vitakka)과 ‘지속적 고찰’(伺, vicāra)을 구행口行, 느낌과 인식을 의행意行이라
일컫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 경우 역시 ‘의도’와 연관되어 있다. 인간의 들
숨과 날숨 같은 ‘신체적 작용[身行]’은 그 상태나 특징이 의도와 무관하지
않는 현상이고, ‘언어적 작용[口行]’과 ‘인지적 작용[意行]’도 그러하다. 그런
점에서 신행身行은 ‘신체적 의도 작용’, 구행口行은 ‘언어적 의도 작용’, 의
행意行은 ‘인지적 의도 작용’이라 번역할 수 있다. 따라서 행의 핵심을 ‘의
도’에서 찾는 것은 타당하다. 문제는 행을 ‘일체의 의도적 행위’로 보는
관점에 있다.
행行은 붓다 법설 전체의 탐구 내용을 근원적 지점에서 결정하는 창
窓이고 문門이다. 행에 대한 이해 여하에 따라, 열반을 비롯한 각종 교설
과 수행에 관한 이해가 결정된다. 그런데 <‘일체의 의도적 행위에 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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