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9 - 고경 - 2024년 9월호 Vol.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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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성’을 그치는 것이 열반이다>라는 관점이 전통 교학과 학계의 행 탐구

             를 지배하는 것으로 보인다. 초기 교학에서부터 현재까지, ‘의도에 따른
             형성 작용’이라는 의미를, 그 의미의 ‘발생 조건’을 성찰하지 않고 ‘무조건

             적’으로 취급하고 있는 태도가 일반적인 것으로 보인다. 12연기에서 설하
             는 <무명을 조건으로 의도적 행위들[行]이 있다>라는 말을 <모든 의도적

             행위는 무명을 원인으로 생겨났다. 따라서 모든 의도적 행위를 그치는
             것이 열반이다>라고 이해한 결과로 보인다. 연기법을 단선적 발생 인과론

             으로 보는 시선인데, 이런 이해는 연기법의 초점에서 벗어나 있다. 필자
             의 판단이 타당하다면, 행에 관한 ‘무조건적/비非 연기적 이해’가 붓다 법

             설에 대한 이해와 교학 형성을 주도해 온 셈이다. 그러나 이 행이라는 말
             은 ‘조건적 용법’으로 보아야 한다. ‘의도에 따른 형성 작용’이라는 의미는

             그 ‘의미의 발생 조건’과 관련하여 이해해야 한다. <모든 언어는 그 의미
             를 발생시키는 조건들과 관련시켜 이해해야 한다>라는 연기적 이해의 원

             칙을 적용해야 한다.
                행의 의미를 ‘무조건적’으로 이해하게 되면, 다음과 같은 대답하기 어

             려운 질문들에 봉착한다. <의도에 따라 행위를 하면서 무엇을 형성해 가

             는 것은 인간 고유의 면모가 아닌가?> <만약 ‘열반은 행의 그침’이라는
             말이 ‘일체의 의도적 행위나 그에 따른 형성을 그치는 것’을 뜻한다면, 과
             연 그런 열반이 인간에게 가능한 것인가? 설혹 가능하다 해도 인간의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의도적 행위는 무상한 것이므로 일체의 의

             도가 모두 그친 것이 열반’이라면, 열반이 불변·절대의 궁극실재라는 것
             인가?> <모든 진리와 행복은 인간의 의도적 선택과 그에 따르는 노력에

             의해 구현된다. 만약 일체의 의도적 행위를 그쳐야 한다면, 열반이라는
             진리와 궁극적 행복은 무엇으로 성취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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