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6 - 선림고경총서 - 02 - 산방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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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일생을 살아가면서도,혹 공(公)을 잘 모르고 미혹
            되는 것은 나도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그러나 더러는 그 공을

            알면서도 고의로 위배합니다.도리어 지공(至公)의 도를 떠벌려
            명예를 얻으려고도 하며,대공(大公)의 가르침을 빌려 직위를 넘
            보기도 하며,또 소공(小公)에 해당하는 살림살이를 횡령하여 자

            신의 욕심을 채우려 하기도 합니다.이들은 너무 깊이 악의 구
            덩이에 빠져들어 가,남들이 자기를 본받는다는 사실도 생각하

            지 못합니다.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속이는 일조차 그만두려
            하지 않습니다.
               옛날에 조정에서 어느 사찰을 개조하여 창고로 쓰려고 했습

            니다.그런데 어떤 스님이 이것을 반대하여 따르지 않자,이 사
            실이 왕에게 보고되었습니다.왕은 해당 관리에게 칼을 내주면

            서 은밀히 말하기를,‘지금 또 항거하면 목을 쳐라.그러나 만일
            죽기를 무릅쓰고 항거하면 절을 그대로 두거라’라고 했습니다.
            드디어 그 관리가 임금께서 이 절을 창고로 고쳐 쓰라고 한 명

            령을 전하자,스님은 웃으면서 목을 쑥 내밀고 말하기를,‘불법
            을 지키다 죽는다면 실로 시퍼런 칼날을 혀로 핥으라고 해도 달
            게 받겠다’라고 했답니다.스님은 목을 내밀고서도 전혀 두려움

            이 없었습니다.이것이 어찌 잠깐 동안의 억지로 그렇게 할 수
            가 있겠습니까?모두가 진성(眞誠)에서 우러나온 것입니다.그

            마음을 추측해 보건대 어찌 절간의 살림살이에 해당하는 소공
            (小公)만이겠습니까?교(敎)와 도(道)에도 깊은 깨달음이 있는
            스님이 분명합니다.

               수(隋)나라의 태수(太守)였던 요군소(堯君素)가 명령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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