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7 - 선림고경총서 - 02 - 산방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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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房夜話 下 125


            ‘모든 승려들은 성곽에 올라가서 부역을 하라.감히 이 명령을
            어기는 자가 있으면 목을 베겠다’라고 했습니다.이때에 도손(道

            遜)이라는 스님이 태수한테 가서 항거하자,요군소가 도손스님
            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이르기를,‘스님께서는 담력과 기상이
            대단히 씩씩하십니다’라고 말하며,마침내 부역을 그만두게 했습

            니다.이것은 대공(大公)에 해당하는 교(敎)를 지키기 위하여 창
            칼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은 것입니다.그것이 어찌 또 일순간

            의 억지로 되는 것이었겠습니까?
               동산 연조(東山演祖)스님의 편지를 대략 소개하면 다음과 같
            습니다.‘금년 여름에는 모든 들판에 가뭄이 들어 손해를 많이

            보았습니다만,나는 그것을 조금도 근심하지 않습니다.다만 여
            러 대중 스님들이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라는 화두를 들고 있

            는데,하나도 깨치는 사람이 없을까봐 오히려 그것이 근심일 뿐
            입니다’라고 했습니다.연조스님께서는 지공(至公)의 도에 항상
            뜻을 두어,늘 그것을 걱정하며 잠시라도 그것을 잊지 않았었습

            니다.그러니 ‘모든 들판에서 가뭄으로 손해본 것은 조금도 걱정
            하지 않는다’고 말한 까닭이 따로 있는 것입니다.소소한 살림살
            이야 지극한 도에 비교한다면,그 근심이야 아무것도 아니기 때

            문입니다.
               절[僧園]의 살림살이는 교(敎)를 일으키고 도(道)를 전하는 데

            에 그 필요성이 있습니다.교가 널리 퍼지지 못하고 도가 후대
            에 전수되지 않는다면,나를 듯한 누각이며 용솟음치는 듯한 전
            각이며 남아도는 황금과 곡식이 대천세계에 가득하다 해도 공

            (公)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오히려 교와 도의 허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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