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5 - 선림고경총서 - 02 - 산방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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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房夜話 中 73


            한 말씀을 머리로만 따릅니다.힘들고 소소한 일은 평생 가까이
            하려 들지 않는데,이런 사람들이 방아나 찧고 전좌나 하는 소

            임을 어찌 맡으려 하겠습니까?비록 잠자리가 편안하고 배불리
            먹는다 해도 욕구가 다 채워지지 않을 텐데 어찌 방앗간에서 고
            생스럽게 일하며 화주를 하려 하겠습니까?손으로는 주미불자

                      10)
            (麈尾拂子) 를 종횡으로 흔들고 높은 사자법상에 앉게 되면,깨
            달을 수 있는 인연은 더욱 멀어지고 훔치려는 마음은 들끓기만

            합니다.후배들을 걱정하여 보살펴 주고,따가운 햇볕을 막아 주
            는 시원한 그늘 나무가 되고자 하지만,어찌 가능하겠습니까?
               이렇듯 교화하는 방편의 성쇠와 고금의 차이를 따져 보면,

            깨닫고 못 깨닫는 것은 모두 훔치려는 마음의 유무(有無)에 관
            계가 됩니다.그래서 이 말은 꼭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객승이 또 질문하였다.
               “훔치는 마음에는 성인과 범부의 차이가 있습니까?”
               나는 말했다.

               “훔치는 마음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그것은 바로 여래묘
                                11)
            명원심(如來妙明元心) 의 지극한 바탕입니다.그러나 도를 구하
            겠다는 뜻이 진실되고 간절하질 못했기 때문에 허망에 가려 점

            점 더 훔치는 마음이 된 것뿐입니다.이것은 벼에서 태어난 멸
            구가 벼를 해치는 것과 같은 이치이고,나무에서 발생한 불이

            그 나무를 태우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비록 사람들에게 있어


              10)주미불자 선사들이 설법할 때에 사용하는 법구.
              11)여래묘명원심 여래가 갖추고 있는 밝은 근본이 되는 마음이니 바로 우리들의
                 본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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