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1 - 선림고경총서 - 02 - 산방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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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房夜話 中 79
겼습니다.그러나 출가한 지 20년이 되었는데도 나머지 세 권을
마저 외우기는커녕,출가 전 외워 두었던 네 권마저도 잊어버릴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 말을 듣던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나는 이 기회를 통하여
대중들에게 말하였다.
“집에 있을 때는 세속을 벗어나야겠다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
에 매양 뭔가 부족함을 느끼었던 것입니다.그래서 아침저녁으
로 그 생각에 4권이라도 외울 수 있었습니다.이윽고 출가의 목
적을 이루어 세속의 얽매임에서 벗어나자 마음이 편안해져 잊어
버리려 하지 않아도 잊어버리게 된 것입니다.이렇게 된 근본을
살펴보면,요즘 참선하는 자들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또한 세상 어디에도 자기 집이 없이 한 몸으로 만 리를 떠돌아
다닐 때는 부족하다는 생각에서 깨달아 보겠다는 마음으로 오직
참선에만 몰두합니다.그러다가 어느 날 눈밝은 스승이 교묘한
질문거리를 만들어 애매한 곳을 물으면,총명한 재주를 동원해
언어와 문자로 이리저리 따집니다.어쩌다 그렇게 해서 한 번
인가(印可)를 받으면,거기에 안주해서 목적을 달성했다고 여깁
니다.이것은 마음이 편해져 허망한 견해가 생겨,말할 때는 깨
달은 듯하나 새로운 경계가 또 나타나면 다시 미혹된다는 것을
전혀 생각지 못한 처사입니다.옛 사람이 해탈했던 경지에도 물
론 도달하지 못한 것이고,지난날 자신이 뭔가 부족하다고 느껴
깨달음을 구하던 마음마저도 몽땅 잃고 만 것입니다.아!성현
의 학문이 어찌 여기서 머무르겠습니까?스스로 뭔가 부족하다
는 생각이 간절하지 못하고,스스로 도를 깨달아야겠다는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