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4 - 선림고경총서 - 02 - 산방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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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고,당신 스스로 성도(聖道)를 가르쳐 중생을 모든 집착에서
떠나게 해야겠다고 하신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왜 모르셨겠습니까?성도(聖道)또한 중
생각자에게 구족하여 언어로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을.듣는 이의
근기에 따라 무려 300여 회나 설법하신 대(大)․소(小)․편(偏)
․원(圓)․돈(頓)․점(漸)․반(半)․만(滿)등의 가르침은 하루
도 입에서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그런데도 요즘이나 옛날의 참
선하는 자들은 그것이 언어로 표현된 방편인 줄을 모르고 참된
법이라고 여겨 집착합니다.그들이 각기 이해한 데에 집착하여
서로 다른 견해를 분분히 내세워 시비와 능소(能所)가 복잡하게
일어났습니다.끝내 일대장교(一大藏敎)와 벽암집 이 다를 바
없이 되어 버렸습니다.성인의 가르침도 그러한데 더구나 다른
언어문자는 어떻겠습니까?
그렇기는 해도 언교(言敎)의 장단점을 잘 응용하느냐 못 하
느냐 하는 것은,당사자가 자기 일에 얼마나 진지하고 절실한가
에 달려 있습니다.자기의 일에 진지하고 절실하다면 하잘 것
없는 이야기도 생사를 초월하는 약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이
것은 경전 중에 ‘거위왕이 우유만 가려먹는다’고 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만일 스승과 제자가 진지하게 자기의 일을 밝힐 수
있고 자기 종문(宗門)의 사활(死活)을 걸머지겠다는 뜻이 있다
면,절대로 문자에 의지해 의미를 깨달으려 하지 않고,깊이 스
스로에게 물어 참구할 것입니다.그렇다면 벽암집 의 유무에
상관하지 않을 것인데 더 이상 무슨 논의할 것이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