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2 - 선림고경총서 - 02 - 산방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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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이 알게 되었습니다.그리하여 책에 얽매여 배우는 사람들이
            근원으로 돌아오는 것을 혹시나 잊어버릴까 염려해서 민(閔)땅

            에 있던 판각(板刻)을 쪼개 버렸습니다.지금 전국 선원에서 다
            시  벽암록 을 간행하는데,이것은 말세에 배우는 자들에게 천
            착만을 더해 주는 것이 아닐는지요?”

               나는 말했다.
               “아닙니다.중생들에게는 각각 자기에게 현성공안(現成公案)

            15)
              이 하나씩 있습니다.부처님께서도 영산(靈山)에서 49년 동안
            설법하시면서도 이것을 일일이 다 설명하지 못하셨고,달마대사
            도 서쪽으로부터 만 리 길을 왔지만 이것을 일일이 지적하지 못

            했습니다.또한 덕산스님과 임제스님 역시 이것을 다 찾아내지
            는 못했습니다.그러니 설두스님이 어찌 이것을 다 송(頌)할 수

            있으며,원오스님이 이것을 다 해설할 수 있겠습니까?가령  벽
            암록 이 백천만 권이 있다 해도 현성공안의 하나인들 더하거나
            덜 수 있겠습니까?묘희스님이 이런 이치를 확실히 알지 못하

            고,  벽암록  판각을 쪼갠 것은,마치 석녀(石女)에게 아이를 낳
            지 말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 일입니다.그렇다면 다시  벽암
            록 을 간행한 사람들의 행동은 석녀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권유

            하는 것으로 가소로운 일입니다.”
               객승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각자의 현성공안은 끝내 불조의 언교(言敎)와는 관


              14)묘희 대혜 종고(大慧宗杲)스님의 호이다.
              15) 현성공안 바로 이 자리에서 성취되어 있는 공안.재판관이 판결을 내리기 전에
                 검토의 기준을 삼는,이미 만들어진 취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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