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3 - 선림고경총서 - 02 - 산방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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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房夜話 中 91


            계가 없는지요?또 우리들은 무엇을 참고로 하여 깨달음의 증거
            를 삼겠습니까?”

               나는 말했다.
               “참고로 할 것도 없고,증거를 삼을 것도 없습니다.오직 각
            자마다 한 순간에 회광퇴보(回光退步)하여 눈앞의 견문각지(見聞

            覺知)를 그대로 한꺼번에 뒤엎어 버려야 합니다.그렇게 되면
            바람결에 들려오는 폭포수 소리와 비온 뒤 시냇물 소리가 모두

            송고(頌古)인 것을 알게 되고,공산(空山)에 진동하는 우레와 대
            낮에 울리는 자연의 청아한 음향이 모두 해설[判]인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늘은 높고 땅은 넓으며,밤은 어둡고 낮은 밝은데 만상삼
            라(萬象森羅)가 정연하게 설법을 하고 있습니다.이것이 바로 현

            성공안인  벽암집 인 것입니다.비록 백천의 설두스님과 원오스
            님이라 해도 언어 형상 바깥 것에 대해서는 절벽을 바라보며 옷
            깃을 여밀 텐데 거기다가 으뜸 원(元)자 한 획인들 붙일 수 있

            겠습니까?선배들이 방편을 시설한다는 면에서 어떤 때는 만들
            고 어떤 때는 부숴 버리며,어떤 때는 금지하고 어떤 때는 장려
            한 것이,다만 세속의 일반적인 풍속을 따라서 그렇게 한 뜻을

            그대는 모르고 있습니다.그대는  벽암집 이 참선하는 자들을
            지해나 천착케 하여 스스로 깨닫는 데 장애가 된다고 말하나,

            두 스님의 마음을 소급해 추측해 보면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것
            입니다.이것은 마치 세존께서 법계 중생 모두가 여래의 지혜덕
            상(智慧德相)을 구비하고 있으면서도 망상 집착(妄想執着)때문

            에 증득하지 못하는 현상을 올바른 법안(法眼)으로 환히 관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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