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2 - 선림고경총서 - 06 - 선림보훈
P. 112
112 선림보훈 중
용간기문(龍間記聞)
4.
불안스님이 고암(高庵)스님에게 말하였다.
“백장(百丈)스님의 청규(淸規)는 바른 길을 내세워 삿됨을 단속
하고 대중을 법도 있게 이끌어 시대 상황에 맞게 후인의 마음[情]
을 다스린 것이다.사람의 마음이란 물과 같아 법도와 예의로 제
방(堤防)을 삼아야 한다.제방이 튼튼하지 않으면 반드시 한꺼번에
터지게 되듯 마음을 다스리지 않으면 제멋대로 날뛰게 된다.그러
므로 망정(妄情)과 사악함을 제거하고 막는 데는 한시라도 법도가
없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예의법도가 어찌 망령된 마음을 방지하는 데에서만
그치겠는가.입도(入道)를 돕는 계단이기도 하다.법도가 서면 해
와 달처럼 밝아 이를 보는 사람이 어둡지 않고 큰길처럼 툭 트여
다니는 사람이 길을 잃지 않는다.옛 성인께서 세우신 법도는 다
르나 근원으로 돌아가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그런데 요즘 총림에서는 법도대로만 애써 시행하려는 자도 있
고,죽자고 그것만을 붙들고 있는 자도 있으며,혹은 멸시하는 자
도 있다.이들은 모두 다 도덕과 예의를 등지고 망령된 마음과 악
을 따르기 때문에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옛 성인께서 법도를 세우신 뜻이 말법시대의 폐단을 구제하고
망령된 마음과 탐욕[嗜欲]이 일어날 소지를 막으며,삿되고 편협
한 길을 끊어 버리겠다는 데에 있었으니,어쩌자고 한번도 이 점
을 생각지 않는가.” 동호집(東湖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