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0 - 선림고경총서 - 06 - 선림보훈
P. 190
190 선림보훈 하
9.
초당스님의 제자 중에 유일하게 산당(山堂)스님만이 옛사람의
풍모를 간직했을 뿐이다.황룡사에 살 때,공적인 일을 맡아 주관
하려면 반드시 용모를 가다듬고 방장실(方丈室)에 나아가 분부를
받은 뒤에야 차 달이는 예의를 갖추었다.이런 태도는 시종 변함
이 없었다.
지은(智恩)이라는 상좌가 어머니의 명복을 빌면서 금(金)두 닢
을 내놓은 일이 있었다.이를 이틀이 지나도 찾지 못하였는데 시
자 성승재(聖僧才)가 청소를 하다가 이를 주워 습유패(拾遺牌)에
걸어 놓자 온 대중이 이를 알게 되었다.
이는 법을 주관하는 주지가 청정하여 윗사람이 하는 것을 아
랫사람이 본받았기 때문이다.
10.
만암스님은 근검․절약하여 소참(小參)에 보설(普說)하면서 공
양하게 되었다.납자들 사이에 나름대로 이를 문제삼는 자가 있자
스님이 그 말을 듣고 말하였다.
“아침에 고량진미를 먹고도 저녁에는 거친 음식을 싫어하는 것
이 사람 마음이다.그대들이 생사의 큰일을 생각하여 적막한 구석
에서 살고자 하였다면 도업(道業)을 이루지 못할까만을 생각해야
한다.게다가 성인과 멀어진 지가 아득한데 조석으로 탐하고 즐기
는 것을 일삼아서야 되겠느냐.” 진목집(眞牧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