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3 - 선림고경총서 - 06 - 선림보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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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조 법연스님 43
님은 정색을 하며 엄한 목소리로 꾸짖었다.
“그대들은 외람되게도 한 절의 소임을 맡고 있다.그러니 큰
일 작은 일 할 것 없이 모두 마음을 다해야 한다.그런데 해마다
소용되는 상주물(常住物)을 계획함은 전 대중이 걸린 문제인데도
알지 못하고 있으니 나머지 세세한 일은 말하지 않아도 알 만하
다.산문에서 일 맡은 이라면 인과(因果)알기를 우리 스승(양기스
님)께서 자명(慈明:985~1039)*노스님을 보좌하셨듯*해야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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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다.그대들은 상주물이 산처럼 소중하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
하느냐?”
법연스님은 평소에 말과 행동이 엄격하고 날카로웠다.그런데
불감스님이 제자의 예(禮)를 깍듯이 한다고 너그럽게 대하였는데
도 이 정도였던 것이다.옛사람도 ‘스승이 엄해야 배우는 자의 도
가 높아진다’하였다.동산 문하에 고매한 도와 인격을 지닌 법손
들이 많았던 이유는 실로 근원이 깊어 지류도 길었기 때문이라
하겠다. 경공여고암서(耿公與高庵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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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연스님은 제대로 해나갈 만큼 절개와 의리를 가진 납자에게
는 방안에서도 엄하게 거절하며 말과 얼굴빛을 꾸미지 않았다.한
*자명(慈明):석상 초원스님의 시호(諡號).
*양기(楊岐)스님은 출가한 후 여러 곳으로 선지식을 찾아다니다가 석상 초원
(石霜楚圓)스님을 남원산(南源山)에서 참례한 후 초원스님이 도오산(道吾山),
석상산(石霜山)그리고 담주(潭州)광화선원(光化禪院)으로 옮기자 따라다니며
약 30년 간 사중의 일[院事]을 총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