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5 - 선림고경총서 - 07 - 임간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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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간록 상 115
“어떻게 불법을 쉽사리 배울 수 있겠는가?기운이 있을 때 대중
을 위하여 한 차례 구걸 행각을 한 뒤에 불법을 배운다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문열스님은 천성이 순박하여 그 말을 의심하지 않고 그 길로 구
걸을 떠났다.그러나 돌아와 보니 수지스님은 취암(翠巖:南昌 소
재)으로 옮겨 간 뒤였다.문열스님이 다시 취암으로 수지스님을 찾
아가 입실(入室)하기를 청하자 수지스님이 말하였다.
“불법은 우선 그만두고 차가운 밤날씨에 대중들에게 숯이 필요
하니,한 차례 더 숯을 구걸해 온 뒤에 불법을 배운다 하여도 늦지
않을 것이다.”
문열스님은 이번에도 스님의 말씀대로 사방을 돌아다니며 숯을
구걸하여 연말이 되어서야 숯을 싣고 돌아와 가르침을 구하니 수지
스님이 말하였다.
“불법이 썩어 없어질까 걱정이냐?마침 유나(維那)자리가 비었
으니 사양치 말고 맡아보아라!”
이에 드디어 종[犍稚]을 울려 대중을 모아 놓고 이 사실을 알리
어 문열스님에게 유나의 직책을 맡아주기를 청하였다.문열스님은
난처한 얼굴빛이 되어 절을 올리고 일어서면서 곧 후회하여 유나의
소임을 포기하려고 하였지만,이미 그렇게 되어버린 일이라 그냥 두
어버렸다.그러면서 수지스님의 의중이 과연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
다고 한탄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깨진 물통을 묶으려고 대껍질을 잡아당기다가
옆에 놓인 쟁반에 물통이 부딪쳐 땅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서
크게 깨쳤다.그제서야 수지스님의 마음 씀씀이를 알게 되어 그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