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3 - 선림고경총서 - 07 - 임간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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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간록 상 113



                 바지를 바삐 입고 버선목을 질끈 맨다
                 동이 트면 인시[寅]이니 늘어지게 하품하고

                 두 눈썹 곧추세우니 그 무게 천 근일세
                 해 돋으면 묘시[卯]이니 쌀 씻어 밥을 지으며
                 눈으로는 경을 보고 입으로는 중얼중얼
                 공양시간 진시[辰]이니 입언저리 군침 돌고
                 허기진 뱃가죽에 입맛을 돋구누나
                 중천에 가까운 해 사시[巳]를 알리니,눈앞의 일들은
                 보기에는 가깝지만 말하려니 걸맞지 않네
                 남천에 태양이 빛나면 오시[午]이니 스스로 헤진 옷을 꿰매다가
                 갑자기 바늘이 튀어나오니 전신[全體]이 나타난다
                 해 기울면 미시[未]이니 낮잠을 깨어
                 찬물에 얼굴 씻고 코를 쓰다듬어 본다
                 해질녘이면 신시[申]이니 가장 천진하여
                 좋은 기별 기뻐하고 나쁜 소식 노여워하네

                 석양이 유시[酉]에는 벽을 향해 좌선하니
                 거울 속은 ‘공’이요 한낮은 북두로다
                 황혼이 드는 술시[戌]에는 모든 움직임이 은밀하여
                 눈뜨나 감으나 모두가 캄캄하다
                 종을 치면 해시[亥]이니 말하면 깨닫고
                 법신은 잠을 자되 이불 덮지 않는 법
                 좌선할 때나 걸을 때나 모두모두 함께하여
                 활발한 기상으로 막힘 없게 할지어다
                 조금이라도 집착하면 붉은 살갗에 멍이 들리니
                 본디 아무 일도 해볼 것이 없구나
                 모두들 함께 모여 나물줄기나 씹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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