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1 - 선림고경총서 - 08 - 임간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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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간록 하 121
橋上山萬層 橋下水千里
唯有白鷺鷥 見我常來此
겨울엔 화롯불을 싸안지 않고 갈대꽃으로 동그란 담요를 만들어
그 속에 발을 넣고 있다가 길손이 찾아오면 그 속에다 함께 발을
파묻고 끝없이 법담을 나누니,그의 빼어난 기상은 사람을 압도하였
다.가을과 여름 밤이면 달구경하기를 좋아하여 큰 대야를 연못 위
에 띄워 놓고 편히 앉아 스스로 대야를 돌리면서 시를 읊고 웃으며
아침녘까지 늘 그렇게 놀았다.구봉(九峯)의 감소(鑑昭)스님은 일찍
이 유정스님 문하에 객승으로 있었는데 성품이 평범하고 진솔하여
때묻고 꾀죄죄한 모습이었으나 자질구레한 일을 일삼지 않는 사람
이어서 항상 스님을 비웃어 왔다.어느 날 저녁 누우려 할 때 스님
이 사람을 보내어 감소스님을 부르니,마지못하여 이맛살을 찌푸리
며 스님을 찾아갔다.
유정스님이 말하였다.
“저처럼 좋은 달이 떠 있는데도 삶에 시달리며 정신이 없으니,
한가히 저 달을 마주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감소스님은 그저 그렇겠다고 대꾸하였다.이윽고 행자를 불러 무
엇인가를 잘 익혀 오라고 분부하였다.감소스님은 마침 뱃속이 출출
했던 때라 약식이려니 생각했는데 한참 후에 내놓은 것은 귤껍질을
다린 차 한 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