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9 - 선림고경총서 - 08 - 임간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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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간록 하 29
로 찾아올 때까지도 죽지 않자 시자들이 쌀가마니로 그를 눌러 죽
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전기를 살펴보니 법안스님은 후주(後周)현덕(顯德)
5 년(958)무오 7월 17일에 병을 앓아 윤월(閏月)머리를 깎고 목욕
한 후 대중과 결별을 하고 앉은 채로 입적하였으며,이국주에게 서
신을 보내어 죽음을 약속한 사실은 결코 없었다.
그러나 한희재(韓希載)가 쓴 오공(悟空)스님의 비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스님은 임종시에 황제에게 서신을 보내어 결별을 하였는데,황
제는 한밤중에 범종소리를 듣고 승원각(昇元閣)에 몸소 올라 눈물을
흘리며 그를 떠나 보냈다.”
또한 동산 오본(洞山悟本:807~869)스님은 그의 어머니가 길에
서 구걸하는 것을 보고서도 모른 척하였는데 결국 어머니가 길바닥
에서 죽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 보니 몇 홉의 쌀이 있었다.이를
대중의 죽그릇에 던져 넣고 명복을 천도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오본스님은 쓸쓸한 골짜기 암자에 혼자 살면서 오랫동안
누더기 하나만을 걸쳤다.신풍산(新豊山)에 살고 있을 때는 이미 60
이 넘었는데,암두 전할(巖頭全豁:828~887)․설봉 의존(雪峯義存
:822~908)․흠산(欽山)세 스님이 잇달아 찾아왔고,이에 대중은
거의 수천 명이나 되었으며,그 당시 스님의 모친은 80세가 훨씬 넘
었을 나이이다.설령 어머니가 아들이 훌륭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
었다 하여도 머나먼 동오(東吳)지방에서 혼자 찾아온다는 것은 역
시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또한 현사 사비(玄沙師備:835~908)스님은 출가하려 하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