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3 - 선림고경총서 - 09 - 오가정종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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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권 임제종 163


                 본색이 산에 사는 늙은이가
                 주먹 하나로 배(背)와 촉(觸)을 구분했네.

                 사방을 꿰뚫어보는 눈은 봉사가 되었다가 또다시 밝아지고
                 집안에 가득한 책을 모조리 버린 채 다시는 읽지 않았지.

                 단비안심(斷臂安心:달마스님과 혜가스님의 기연)의 은밀한 뜻
               을 깨달아
                 맨손을 뜨거운 물에 씻었으며
                 부처님 손,나귀 다리의 험난한 관문을 꿰뚫어
                 고준한 기봉(機鋒)으로 화살촉을 씹었네.

                 산채로 황산곡을 묻어 버리니
                 암자 앞 계수나무 꽃향기 원근에 가득하고
                 다복스님 친견했을 때
                 울타리 대줄기는 굽은 것과 비스듬한 것으로 나뉘어 있었네.

                 티끌이 날아 하늘 가리니 쓸어 없애기 어려운데
                 쓸모없는 잡동사니는 가슴속의 장애이기에 절대 금기하고
                 고양이 쥐 잡음에 잽싼 솜씨 다하여 서툰 짓이 생겨나니
                 궁색스런 기량에 그 누가 눈 흘기랴.

                 인연 따라 깨달으면 잘못이 없다고
                 영원스님 죽이나니 무딘 칼이 명검보다 낫구려
                 부처 뽑는 과거장에서 장원급제하였다고
                 사심스님에게 내려준 약은 비상보다 독하였네.
                 야반삼경 푸른 연못에 차갑게 비쳐 오는 달빛은 없었지만
                 옥도끼를 정교히 다듬어 만들고

                 따뜻한 봄날 맑게 타는 백설곡의 선율이 끊겼으나
                 봉황새 울음이 아교 되어 끊긴 줄을 몸소 잇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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