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0 - 선림고경총서 - 09 - 오가정종찬(상)
P. 90

90 오가정종찬 상


               스님은 대답하지 못하였다.



               스님은 암두스님과 함께 풍주(灃州)오산(鰲山)의 객점까지 갔
            을 때 폭설로 길이 막혔다.이에 암두스님은 잠만 잤고 스님은 계
            속 좌선을 하였는데,하루는 암두스님을 불러 깨웠다.

               “사형!일어나시오.”
               “ 무슨 일이오?”

               “ 금생엔 다 틀린 모양이군!문수(文邃:欽山)라는 자와 함께 행
            각할 때는 가는 곳마다 그놈 때문에 귀찮은 일만 생기더니,이제
            사형은 무작정 잠만 자니…….”

               그러자 암두스님이 악!하고 고함을 치고서 말을 이었다.
               “가서 먹고 자게나.매일 하는 일이 시골구석 토지신 같으니

            뒷날 언젠가는 많은 사람들을 홀릴 것이오.”
               그 말에 스님은 가슴을 짚으며 말하였다.
               “이 속이 답답합니다.”
               “ 나는 그대가 뒷날 고봉정상에 토굴을 마련하고서 부처를 꾸짖

            고 선사를 욕하리라고 믿어 왔었는데 오히려 이런 말을 하다
            니…….”

               “ 저는 참으로 답답합니다.”
               “ 정말 그렇다면 그대의 견처를 하나하나 점검해 보지.옳은 견
            처는 증명해 주고 옳지 않은 견처는 잘라 주겠네.”

               “ 내 처음 염관스님에게 갔을 때 색공(色空)의 이치를 거론하시
            는 말씀을 듣고 들어갈 곳을 찾았습니다.”

               “ 앞으로 30년 동안 절대로 그 말을 듣지 말게나.”
   85   86   87   88   89   90   91   92   93   94   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