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8 - 선림고경총서 - 10 - 오가정종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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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오가정종찬 하

                 황매산 한밤중의 전법이 정통이 아님을 비웃으며
                 냉천사(冷泉寺)의 똥막대기[智門光祚]에서 빛이 뻗어 나옴을 보고
                 운문스님의 한마디 말씀에 받들 만한 진실이 담겨 있음을 믿었
               노라.

                 백옥의 채찍으로 여의주를 친다 해도 흠집이 생기지 않으니
                 그 빛은 밝은데 차갑기는 재[灰]와 같고
                 무봉탑은 맑은 연못 같아서 용이 사는 것을 바라지 않으니

                 그림자는 둥그레 엉켜 까만 옻칠을 한 것 같구나.
                 고금을 평하는 안목 없어
                 보라매가 한대백의 길목을 지키다가 낚아채 갔고
                 유․불의 높낮이를 구분하여
                 이전원의 늙은 호랑이가 온몸에 땀나게 하였네.

                 다자탑(多子塔)앞에서 일찍이 염화미소한 일 없었는데
                 삼지(三指)칠마(七馬)는 말하여 무엇하며
                 소림사 눈 내리는 밤에 애당초 팔 자르고 마음 편히 한 일 없
               었는데
                 오엽일화(五葉一花)는 부질없이 정통을 지적한 일이로다.

                 취봉사에 주지해도 좋고 설두산에 주지해도 좋으나
                 끓는 가마솥 기름을 개가 핥으려는 격이며
                 조사선을 말하고 문자선을 말하나
                 새로 바른 흙벽에 달팽이가 기어가는 듯하구나.

                 천길 높이에서 뿜어내는 눈가루가 폭포 이루어
                 가슴속에 쌓인 회포 흘려 보내고
                 동정호 일흔두 봉이 돌 병풍 이룸을 사랑하여
                 그림책에 수록해 돌아왔네.

                 그 높은 풍모 뛰어난 운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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