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4 - 선림고경총서 - 14 - 조동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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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스님이 말하였다.
“이 사람은 뒷날 천사람 만사람이 붙들어도 머무르지 않으리
라.”
스님이 운거스님과 물을 건너던 차에 물었다.
“물이 얼마나 깊은가?”
“ 젖지 않을 정도입니다.”
“ 덜렁대는 사람이군.”
“ 스님께서 말씀해 보십시오.”
“ 마르지 않을 정도라네.”
오조 법연(五祖法演:?~1104)스님은 말하였다.
“두 사람의 이 대화에 우열이 있느냐?산승은 오늘 팔을 휘젓
고 가면서 여러분을 위해 설파하겠다.
물을 건넘에 ‘젖지 않는다’고 한 구절은 창고에 진주가 무더기
로 쌓여 있는 격이며,물을 건넘에 ‘마르지 않는다’고 한 구절은
꽂을 송곳조차 없는데 무슨 가난과 추위를 말하겠는가.* 마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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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젖은 길 양쪽 다 관계치 말고 그저 녹수청산(綠水靑山)에 맡
기게.”
*향엄 지한스님이 대나무에 기왓장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깨치고는 송(頌)을
지었는데,위산스님이 듣고 앙산스님에게 ‘향엄이 확철대오했구나’하셨다.
앙산스님이 향엄스님의 경계를 확인코자 다른 게송을 지어 보라고 하자 향엄
스님은 다음의 게송을 지었다.‘지난해 가난은 가난이 아니고/금년의 가난이
진짜 가난일세/작년의 가난은 송곳 꽂을 땅이라도 있더니/금년의 가난은 송
곳마저 없구나.’앙산스님은 ‘여래선은 사제가 알았다고 인정하겠네만 조사선
은 꿈에서도 보지 못하고 있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