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4 - 선림고경총서 - 15 - 운문록(상)
P. 54
54
11.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시절 운세가 경박해져서 이제 상법(像法)․말법(末法)에 들어섰
다는 점을 우리는 꼭 알아야 한다.요즈음 스님들은 문수보살을
친견한답시고 북쪽으로 가고 남악에 유람한답시고 남쪽으로 간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행각하는 명자비구(名字比丘)들은 부질없이 신
도들의 시주만 소비할 뿐이니,정말 씁쓸한 일이다.
질문했다 하면 새까만 칠통 같으면서 오로지 늘 하던 대로 세
월을 보내는구나.설사 두세 사람은 있다 해도 헛되이 해박한 지
식만을 챙겨 이야기나 기억한다.그것으로 가는 곳마다 그럴듯한
말을 찾으면서 큰스님을 인가하고 뛰어난 근기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박복한 업을 짓는다.뒷날 염라대왕이 못질을 할 때 가
서 ‘내게 말해 준 사람이 없었다’고 말하지 말라.
처음 발심한 후학이라면 반드시 정신을 차려야지,부질없이 말
만 기억해서는 안 된다.아무리 많아도 헛것은 적고 참된 것만은
못하니,앞으로 스스로를 속일 뿐 무슨 가까워질 일이 있겠느냐?”
“ 저는 미혹에 빠져 있습니다.스님께서 한번 지도해 주십시오.”
“ 뭐라고?”
“ 부처님이 말씀[敎]해 주신 가르침의 뜻이 무엇입니까?”
“ 아직 대답이 끝나지 않았다.”
“ 스님께선 무어라고 대답하시렵니까?”
“ 영리하다고 생각했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