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8 - 선림고경총서 - 19 - 설봉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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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설봉록
인연 따라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나 처음에서 끝까지 생겼다가 허
물어지고 인연 따라 생기지 않은 것은 영겁이 지나도록 항상 견고하
니,견고한 건 남고 허물어지는 건 없어진다.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모든 것이 흩어져 달아날 죽음을 맞기 전에 미리 준비 좀 한들 어떠
랴.
그런 까닭에 돌을 포개서 방을 짓고,나무를 잘라서 함을 만들고,
흙을 싣고 와서 흙더미를 쌓아 감실(龕室)을 마련하는 것이다.모든
준비가 다 끝나면 머리는 남쪽으로 두고 다리는 북쪽으로 향해 뻗고
산을 베고 눕게 된다.
죽음을 맞으며 꼭 부탁할 일은 길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나의 뜻을
어기지 않고 마음을 아는 이는 내 뜻을 바꾸지 않기를 바라는 것뿐
이다.다시 한 번 부탁하노니 부지런히 힘써 주면 다행이겠다.
설령 뒷날 크게 교화를 펼친다 해도 그것이 당장에 바른 안목을 조용
히 넓혀 가는 것만 하겠는가.잘 생각하고 자세히 살펴 생각하여라.
명(銘)하여 말하였다[설두(雪竇)스님은 여기에 주를 달았다].
형제들 네거리에 늘어서서 [나라에 두 임금 없으니/
알겠느냐?]
한마음으로 한 모습 익힐지니라 [바람이 지나가면 풀이 눕는다./
막바로 한 말일지니라!]
토지의 주인을 송산(松山)이라 하고 [사방을 돌아봐도 끊어지지 않고/
보아라!]
난탑(卵塔)을 난제(難提)라 부른다 [홀로 모습 드러내었도다./
험(險)!]
다시 오랑캐 집안의 가락 있으니 [하나는 서쪽,하나는 동쪽이니/
큰일이구나!]
그대들은 꼭 알아두어라 [남쪽에서도 또 북쪽에서도 소리가 난다./
알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