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1 - 선림고경총서 - 19 - 설봉록
P. 81
설봉록 上 81
일을 꺼린단 말인가?틈만 있으면 방장으로 올라오지 말아라!여기
와서 무엇을 찾겠다는 것이냐?노승 둘레에 빙 둘러 모여서 입술과
혓바닥을 놀려대고 있으니 너희들은 부끄러움이란 것을 알고나 있느
냐?마치 술 취한 사람처럼 여기 디뎠다 저기 디뎠다 하니 정말 부
끄러워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좋을 것이다.달마의 종자를 멸망시
키지 말고 썩 나가거라!”
9.
스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알겠느냐?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이미 노파심이다.
지금은 모두가 갈 곳을 모르고 말속에 머리를 처박고 들어가 세
간에 널리 퍼진 말들로 서로를 붙들어 주고 있다.그러다가 문득 어
떤 기미라도 있게 되면 갑자기 사람들에게 붙잡혀 사실대로 말해 보
라는 질문을 받게 되고,그렇게 되면 그는 어지럽게 발걸음을 내디
디고 만다.이는 마치 캄캄한 밤중에 까만 닭을 놓아준 것과 비슷한
일이니 그들과 무슨 말을 하겠느냐.그들은 도처에서 여기를 디뎠다
저기를 디뎠다 하며 임금과 신하를 묻고 부처와 조사를 묻는다.또
한 부처님이 몸을 벗어난 곳[出身]과 몸을 바꾼 곳[轉身]을 묻고,몸
있기 전[身前]과 몸 떠난 후[身後]를 물어보고 있다.좋고 나쁜 것도
모르는 이런 노스님들도 소리치면 화답할 줄은 알아서 누가 질문을
하면 곧 답은 해주고 있다.묻는 사람과 답하는 사람,이 둘이서 서
로 쫓아다니며 풀 속을 어지럽게 달리고 있는데 어찌해서 그들을 밀
어붙여 몸을 돌리게 하지 못하고 이러한 나쁜 물을 가져다 그들의
마음[心識]에 쏟아 붓고 있는가?오직 풀더미 속에서 살아갈 궁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