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9 - 선림고경총서 - 20 - 현사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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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사록 中 119


               “이 흐리멍덩한 바보 같으니,어디 근처라도 가겠느냐.”
               충기(沖機)스님이 말하였다.
               “모두 다 해도 한 색깔일 뿐입니다.”

               “ 모조리 이처럼 미련하니 언제 끝날 기약이 있으랴.”
               그리고 스님께서는 교연(皎然)스님에게 물으셨다.
               “그대는 어떻게 말하겠느냐?”

               교연스님이 “여지를 몰라서는 안 됩니다”하자 스님께서 스스
            로 말씀하시기를,“여지일 뿐이다”하고는 이어서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많은 시간을 여기 내 회하에 있으면서 모조리 이렇

            게 말을 하다니…….승속을 분별 못 하고 길흉을 알지 못하는구
            나.내가 요즈음 그대들에게 말했었지.작용하는 곳에서 기틀을 바
            꾸지 않는다고.어째서 오로지 말대꾸에만 신경 쓰느냐.무슨 관계

            가 있다고.
               여러 스님네들이여,응당 가까이할 사람이어야 한다.또한 견문
            각지를 버려 기봉(機鋒)을 분별하고 좋고 나쁨을 밝히며 시비를 환

            히 알며 있는 곳마다 우뚝하면 흐리멍덩함을 면하리라.그러나 한
            결같이 이렇게만 하고서는 ‘색을 보는 그대로가 마음을 보는 것이
            니 다른 물건은 없다’고 한다면 옳다 할 곳은 전혀 없고 견해만
            짓는 것일 뿐이다.

               여러 스님네들이여.이러한 말들이 무엇으로 출가인을 감당하
            겠으며,설법하는 근기를 감당하겠느냐.그렇게 삼삼오오 모여 속

            세의 명리나 좋고 나쁨을 말한다거나 옷생각 밥생각을 하지 말라.
            그래가지고 언제 끝날 기약이 있으랴.뒷날 홀연히 열병이 들어
            사나흘 지지듯 하면 귀신을 보고 눈이 휘둥그래질 것이다.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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