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1 - 선림고경총서 - 20 - 현사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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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사록 上 31
앞뒤로 백여 명이 대답을 하였으나 모두 맞지 않았다.
뒤에 원창(元昌)이라는 자가 있어 대꾸하였다.
“저는 스님을 먹겠습니다.”
“ 무얼 먹겠다고?”
“ 무를 먹겠다고요.”
“ 알았다,알았어.”
스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요즈음 여러분에게 이것이 먹는 것이냐고 물었으나 그대
들은 알지 못하고 오로지 대꾸할 말만 찾았으니 언제 끝날 기약이
있겠는가.
내 이제 곧장 그대들에게 말하노니,말을 들으면 바로 종지를
알아야 한다.먹을 것은 먹고 쓸 것은 써야지,이처럼 흑백을 분간
못 해서는 안 된다.나는 때때로 그대들에게 말했다.검고 흰 것을
그 자리에서 분별해야지 이처럼 멍청해 가지고는 아무것도 되는
것이 없다고.나는 하루종일 이를 가지고 일삼지만 그래도 이러한
데 한마디[一轉語]던져 놓고 다 되었다고 말하지 말라.그것은 보
통 있는 일일 뿐이다.
이처럼 한다면 그대들 마음대로 높이 멀리 날아다닐 일이지 여
기에 있으면서 산에 오를 것이 없다.”
한 스님이 도리어 무를 가지고 산으로 되돌아와서 물었다.
“스님께서는 어떻게 하시렵니까?”
“ 그대가 먹게 하려 할 뿐인데…….”
“ 어떤 것이 무를 먹는 것입니까?”
“ 너도 배부르고,나도 배부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