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7 - 선림고경총서 - 21 - 태고록
P. 177
태고록 下 177
넓고 깊어서 있는 그대로이네
봄바람은 난만하고 물은 흘러가는데
천지를 홀로 걸으니 누가 나를 짝하랴.
만일 산중에서 종자기(鍾子期)를 만났던들
어찌 누른 잎*가지고 산을 내려왔으랴.쯧쯧!
47)
2.
위없이 높은 덕은 칭찬할 수도 없고
한없는 깊은 자비는 비방할 수도 없다
한량없는 동안 부지런히 닦은 미묘한 행은
항하의 모래수로도 헤아릴 수 없구나
더구나 집을 떠나 설산에 들어갈 때에는
아내는 통곡하고 애를 태웠다
애를 태우고 아픔이 골수에 사무쳤으나
진정한 자비로 세상을 구제할 줄을 누가 알았으랴
부디 어리석지 말라
꿈이 아닌데 꿈이라 말하고
꿈 같은데 꿈이 아니다
다만 이 석가모니 부처님만이
고요하고 함이 없어 언제나 움직이지 않고
아무것도 없이 그대로 드러나되
* 누른 잎: 열반경 영아행품(嬰兒行品)에 나오는 비유.우는 어린아이에게
누른 잎을 돈이라고 속여 울음을 그치게 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