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8 - 선림고경총서 - 21 - 태고록
P. 28
28 태고록
번에 백천 가지로 따져 묻더라도 나를 녹이지 못할 것이요,호통
한 소리로 모두 답할 것이다.
이렇게 묻고 답한다면 미륵이 하생할 때까지 계속하더라도 그
것은 업식(業識)의 일이요,본분(本分)의 일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더구나 난해하고 까다로운 문장으로 날카로운 말을 쓰는 것은 다
만 향상의 종승[向上宗乘]을 파묻을 뿐만 아니라,곧 양생의 비공
[孃生鼻孔:양생은 어머니,비공은 콧구멍.어머니의 태에서 나온 때
의 본래면목]을 잃고 말 것이다.그러므로 지금까지의 부처님과 조
사님네도 문자나 언어를 세우지 않고,마음으로 마음을 전하고 법
으로 법에 도장 찍어 대대로 이어 쉬지 않고 전했던 것이니,지금
도 그런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그것은 그만두고,무엇이 향상
의 종승인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내가 이 일을 들어 보이더라도 뒷날 아무도 알아들을 이가 없
을까 두렵다.그러나 이 경지에 이르러서는 부처라는 이름도 소용
없고 조사라는 이름도 소용없으며,납승이라는 이름도 소용없고,
4 과(四果)․4향(四向)․3현(三賢)․10지(十地)․등각(等覺)․묘각(妙
覺)이라는 이름도 소용없다.열반이라는 이름도 소용없고 생사라
는 이름도 소용없으며,8만 4천 바라밀이라는 이름도 소용없고 8
만 4천 번뇌라는 이름도 소용없다.그러니 일대장교(一大藏敎)가
이 무슨 부질없는 말이며,1천7백 공안이 이 무슨 잠꼬대이며,임
제(臨濟)의 할과 덕산(德山)의 방망이가 이 무슨 아이들 장난인가.
듣지 못하였는가.옛날 노스님은 ‘문을 닫고 자는 것은 상상근
기를 지도함이요,이리저리 돌아보며 눈썹을 찡그렸다 폈다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