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4 - 선림고경총서 - 21 - 태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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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옷인가?”
곧 그 가사를 입고 말씀하셨다.
“갑자기 사강락(謝康樂:중국 南朝 송나라 시인 謝靈運)을 놀라
게 할 시흥(詩興)이 내 옷에서 일어나는구나.옷깃 앞의 숲과 골짜
기는 어두운 빛을 거두었고,소매 끝의 구름과 노을은 저녁 비를
거둔다.앗!”
또 법의를 들고는 말씀하셨다.
“이 만수가사는 지금까지의 불조가 전하신 위없는 복밭의 큰
해탈의 옷이요,또 우리 본사 석가화상이 마하가섭에게 전하여 대
대로 이어오다가 33조 대감(大鑑:육조 혜능)존자에 이르러 다툼
으로 끊어진 것인데,어떻게 해서 왕궁에서 나와 이 산승의 손에
왔는가.사람들이 들불이 태워도 없어지지 않다가 봄바람이 불면
또 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다시 대중을 불러 “나를 따라 머리에 이었다가 입으시오”하시
며 대중과 함께 입으시고는 그 한 자락을 들고 대중을 불러 말씀
하셨다.
“보는가.대중 스님과 나만이 입은 것이 아니다.시방세계의 허
공과 대지의 삼라만상과 성인과 범부,유정․무정과 모든 일과 물
건이 한꺼번에 다 입었다.앗!”
법좌를 가리키면서 말씀하셨다.
“백천의 불조가 여기서 고약한 냄새를 풍겨 사바세계에 가득하
였다.오늘 이 산승이 사대해의 물을 기울여 그것을 깨끗이 씻는
것이니,대중 스님은 너무 어수선하다고 하지 말라.”
다시 법좌에 올라가 향을 피우고는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