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9 - 선림고경총서 - 24 - 나호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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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호야록 下 129


                 호롱박 속에 또 하나의 봄이 있음을 믿어야 하리

                 해지는 유시(酉時)라
                 고요한 방에 향 사르고 호젓이 앉았노라니
                 홀연히 오른 달 동창으로 들어와
                 내 자리 앞의 향로를 비추네

                 황혼이 지는 술시(戌時)라
                 종루의 범종소리에 해는 벌써 사라지고
                 객사에 머무른 길손 갈 길이 아득한데
                 꽃 위에 놀던 벌들도 꿀 찾는 일 쉬었네

                 인정 치는 해시(亥時)라
                 이때야말로 늙은 쥐의 세상이라
                 침실 앞의 등불이 홀연히 꺼지니

                 상 밑에서 나의 짚신꾸리를 물어뜯는구나

                 한밤중 자시(子時)라
                 꿈속에 분명 남 시키는 대로 하여
                 밤새껏 약을 짓다 동이 텄는데
                 일어나 보니 어느 곳에도 약초는 없네.

                 雞鳴丑 念佛起來嬾開口
                 上樓敲磬兩三聲 驚散飛禽方丈後

                 平旦寅 當人有道事須親
                 不聞先聖有慈訓 莫認癡狂作近鄰

                 日出卯 大道分明莫外討
                 日用縱橫在目前 逢原左右拈來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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