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4 - 선림고경총서 - 24 - 나호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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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수 있는가?”
붕선사가 그 시를 읊어 가다가 “누가 이 뜻을 알까?남전스님
을 생각나게 하네[誰人知此意 令我憶南泉]”하면서 “억(憶)”자를
암송할 때 성선사가 느닷없이 붕선사의 입을 손으로 막으면서,
“그만!그만!”하니 붕선사는 확연히 느낀 바 있었다.그 후 붕선
사는 형주(衡州)화약사(華藥寺)를 맡았다.천제선사의 법제자가
되었고 무주(婺州)천령사(天寧寺)로 옮겨 왔다.이에 앞서 숭령(崇
寧)2년(1103)에 나라에서 주군(州郡)에 명을 내려 선원을 세우고
연호를 다시 세운 일에 맞추어 절 이름을 만수사(萬壽寺)라 짓고
절의 현판을 크게 써서 걸게 하였다.이때 불교가 부흥하게 된 경
사를 묘감(妙堪:운문종)선사에게 돌리니 묘감선사는 사양하면서
말했다.
“앞으로 어디에서 눈 밝은 스님 삼백예순 명을 얻어 천하에 퍼
뜨릴 수 있겠는가.이로부터 불법이 쇠퇴할까 두렵다.”
정화(政和)연간(1111)에 이르러 숭령사(崇寧寺)를 천령사(天寧
寺)로 개명하였다.붕선사가 천령사에 주지를 한 것은 소흥(紹興)
7 년(1137)의 일이다.일들이 뒤섞이는 것을 관리에게 알려 마침내
왕명을 받들어 보은광효사(報恩廣孝寺)라 이름을 바꾸고 오로지
선조를 추숭(追崇)하는 일을 지휘하도록 하였다.소흥 15년에 ‘광
효(廣孝)’에서 ‘광(廣)’자를 ‘광(光)’자로 바꾸어 썼다.이러한 일들
을 모두 붕선사가 시작했으므로 “붕선사는 끝없이 성효(聖孝)를
넓혔다”고 기록된다.아울러 묘감선사의 말을 기록하는 바이니 묘
감선사는 설봉사의 주지로 있다가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