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8 - 선림고경총서 - 24 - 나호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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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상서(湘西)지방을 돌아다니다가 녹원사(鹿苑寺)에 머무
            르니,진여(眞如)선사는 그에게 분좌(分座)하도록 하고 납자 지도

            하는 일을 맡겼다.그 후 오랜 세월이 흘러 감상(灨上)으로 돌아왔
            는데,누군가의 말에 의하면 서당사(西堂寺)에 주지를 하다가 세상
            을 떠났다고 한다.현수좌가 보령사의 스님에게서 공부한 것은 태

            원 부(太原孚)선사가 설봉사(雪峰寺)에 있었던 일과 같으며,그가
            백운사(白雲寺)로 찾아간 것은 대선 불(大禪佛)이 곽산사(霍山寺)에
            간 것과 같은 일이다.바탕을 갖추고서도 결국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것은 무슨 까닭일까?어쩌면 시냇가 할머니가 스님의 옛 이
            름을 부른 그런 경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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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세속일을 처리하는 네 가지 방법/법연(法演)선사



               불감(佛鑑)선사가 원부(元符)2년(1099)오조(五祖法演)스님 문하
            에서 수좌승으로 있을 때였다.태평사(太平寺)영원(靈源)선사가

            황룡사(黃龍寺)에 부임하고 그 자리가 비자 영원선사는 서주 군수
            (舒州郡守)손정신(孫鼎臣)에게 불감선사를 추천하여 마침내 그의
            명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법연(法演)스님이 가사를 물려주니

            불감선사는 이를 받아 들고 대중에게 설법하였다.
               “옛날 석가모니불이 한 발 여섯 자 금란가사를 천 자나 되는

            미륵불의 몸에 걸치니 미륵불의 몸이 크지도 않았고 금란가사가



            *마조(馬祖)스님이 깨달은 뒤 유명해져서 고향에 갔는데,시냇가에서 어느 할멈이
              “키[箕]쟁이 마씨네 아들 아무개로구나!”하였던 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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