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1 - 선림고경총서 - 25 - 종문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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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문무고 下 121
데 공안선사 역시 돌아보지도 않았다.평시자는 의탁할 곳 없이
떠돌아다니다가 뒷날 세 갈래 갈림길 입구에서 범을 만나 잡아먹
혔다.그는 결국 대양사 명안선사가 손가락을 굽혀 보여준 그 예
언을 면하지 못한 것이다.슬픈 일이다.
4.게송 천 수를 지었으나/태화(太和)산주
아미산(峨嵋山)의 백장로(白長老)가 한번은 이렇게 말하였다.
“고향사람인 설두스님이 지은 백여 수의 송은 문장이나 뜻이
남보다 뛰어나지 않는데도 어찌하여 부질없이 세상에 큰 명성을
얻었을까.”
그리고는 드디어 게송 천 수를 지어 열 곱절 많게 하고 스스로
이를 엮어 문집을 만들었다.그는 후일 자신의 명성이 설두선사를
압도하리라고 잘못 생각하고서 가는 곳마다 사람들에게 감상해
주기를 요구하였다.
당시 태화산주(太和山主)라는 스님이 있었는데 그는 당대에 도
있다는 큰스님을 두루 친견하고 법창 우(法昌倚遇:1005~1081)
선사에게 법을 얻은 분이다.그는 세상에 나와 태화사에 주지를
하면서 산주(山主)라 불릴 만큼 그 기세가 여러 선림을 압도하였
고,함부로 인가해 주지 않았다.백장로가 자기 송을 가지고 태화
산주를 찾아가 귀감이 될 만한 한마디 말을 얻어서 후학들에게
신임을 받으려 하였으나 태화산주는 그 송을 보고서 침을 뱉고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