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4 - 선림고경총서 - 25 - 종문무고
P. 144
144
나와서야 말할 수 있었다.이에 오조스님이 드디어 ‘말 해냈구나’
하니 원오스님이 말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잠시라도 놓쳐 버리면 감당할 수 없습니다.”
20.지견과 정해가 많은 납자들/대혜선사
스님(대혜)이 입실했던 제자들이 물러간 후 한가히 앉아 있다가
갑자기 말하였다.
“요즘 납자들은 지견(知見)과 정해(情解)가 많다.쓸모 없는 말,
긴 이야기를 기억해서 그 속에서 답을 구하는 것은 마치 손에 값
을 따질 수 없는 마니주(摩尼珠)를 쥐고 있다가,어느 누가 손안에
있는 게 무엇이냐고 하면 갑자기 그 구슬을 버리고 흙덩이를 집
어 올리는 것과 같은 꼴이다.그건 멍청이다.그렇게 참구한다면
당나귀해가 되도록 참선을 해도 깨치지 못할 것이다.”
스님이 하루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여기 내게는 사람들에게 줄 법이 없고 다만 사건에 따라서 판
결을 내려 줄 뿐이다.비유컨대 무엇보다도 애지중지하는 유리병
을 가지고 오면 내가 한번 보고는 너를 위하여 곧 유리병을 깨뜨
려 버릴 것이다.네가 또다시 마니주(摩尼珠)를 가져오면 나는 또
빼앗을 것이며,네가 그대로 오는 것을 보면 나는 너의 두 손을
잘라 버릴 것이다.이 때문에 임제스님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