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2 - 선림고경총서 - 25 - 종문무고
P. 52
52
하고 자신이 돌아가 공양을 마련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였다.이
처럼 30년 간을 비바람이 몰아쳐도 변함없이 계속한 결과 불전(佛
殿)과 장서각(藏書閣),나한당(羅漢堂)세 채를 새로 세웠고 사원에
있어야 할 것들을 모두 갖추어 놓았다.황룡 사심(黃龍死心)선사가
그곳을 방문하자 혜연수좌가 말하였다.
“신(新:사심)장로!당신은 항상 알음알이를 없애라[沒意智]는
하나만을 가지고 모든 사람을 싹 쓸어버리기를 좋아하니,오늘밤
여기에 머무르면서 그대와 더불어 큰 법문을 자세히 따져 보기를
기대하오.”
사심스님은 그를 꺼리며 시자에게 말하였다.
“저 사람은 진정 깨달은 바 있는 자라서 그와 더불어 어금니를
드러내고 우열을 가릴 수는 없으니 차라리 여기를 떠나 쉬는 것
만 못하겠다.”
그래서 그곳에서 묵지 않고 떠나가 버렸다.
연수좌는 혜안사에서 세상을 마쳤다.다비를 하니 육근(六根)
가운데 세 가지는 허물어지지 않았고 사리가 무수히 나왔으며 신
기한 향기가 방에 가득하여 여러 달을 끊이지 않았다.봉신현은
병화(兵火)로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부서져 버렸지만 혜안사의 여
러 전각만은 우뚝하게 남아 있었다.이 어찌 원력의 성취로 신중
들의 가피가 있었던 결과가 아니겠는가?오늘날 제방에서 팔짱을
끼고 눈앞의 것들을 누리려고만 하는 자들이 연수좌의 풍모를 듣
는다면 부끄러운 마음이 없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