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8 - 선림고경총서 - 29 - 산암잡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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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고 바다를 건너오셨습니다.그리하여 문자를 세우지 않고,곧
장 사람 마음을 가리켜,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루는 길을 열어 주
셨으니 이것이 선종입니다.”
황제가 이를 가상히 여기자 묘고스님은 다시 자연스럽게 말하
였다.
“선과 교는 본래 하나였습니다.비유하자면 수백 수천의 다른
강줄기가 모두 바다로 돌아가 한 맛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또 폐
하께서 온 누리를 다스려 천하가 통일되니 사방 오랑캐가 온갖
조공을 바치고자 여러 갈래의 길을 따라 찾아오지만 반드시 순성
문(順成門)을 통과하여 황금 대궐에 이르러 몸소 용안을 본 후에
야 집안에 도달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만일 교학가
들이 언어문자에 집착하여 현묘한 뜻을 깨닫지 못한다면 이들은
아직도 순성문 밖에 있는 사람들이며,선종에서도 예닐곱 개의 좌
복이 낡아 떨어지도록 참선을 했다 해도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이들 또한 순성문 밖에 있는 사람들이니,모두 다 일을 마쳤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는 곧 교학을 익히는 자는 반드시 현묘한 이치를 통달해야
하고,참선하는 자 또한 반드시 스스로의 마음을 깨달아야 함을
말한 것입니다.마치 우리 신하들이 오늘에야 몸소 황금 대궐 위
에 올라와 한 차례 용안을 보고서야 비로소 집안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에 황제는 기뻐하며 음식을 하사한 후 물러나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