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5 - 선림고경총서 - 29 - 산암잡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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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암잡록 下 125
고 연잎 위를 걸어가는 꿈을 꾸었다.그 후 가벼운 병이 들었는데
이웃 사람들이 그날 밤 많은 깃발과 큰 가마가 그녀의 집으로 들
어가는 것을 보았다.새벽녘이 되어 노파를 살펴보니 그녀는 합장
염불하는 모습으로 간 뒤였다.
나는 부처님의 말씀 가운데,말법에는 빗발처럼 많은 남염부제
국(南閻浮提國)여인들이 정토에 왕생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이 주씨 노파를 보니 참으로 거짓이 아니다.
홍무(洪武)병술년(1370)겨울 봉화(奉化)에 사는 전자중(田子中)
이 태백사(太白寺)에 나를 찾아와서 오랫동안 함께 기거하였다.내
가 우연한 기회에,‘금강반야경은 염라대왕의 명부전에서는 공덕
경이라 일컫기에 세간 사람들은 죽은 이를 천도하는 데 금강경을
많이 읽는다’고 하였더니,전자중은 죽을 때까지 이 경을 수지하
겠다고 맹세하였다.어느 날 그의 모친 기일(忌日)에 신심을 내어
금강경을 백 번 넘게 외워 천도한 뒤 새벽에 일어나 소나무 의자
위에 앉아 아홉 번째 읽어 가는 중이었다.그때 도깨비들이 형틀
에 묶인 한 노파를 끌고 와 그의 의자 앞에 꿇어앉혔는데 헝클어
진 머리카락이 얼굴을 덮고 있었다.이에 자세히 보니 그 노파는
바로 돌아가신 어머니였다.전자중이 깜짝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
으나 잠깐 후 다시 끌고 가는데 마치 형틀을 벗겨내려는 듯한 모
습이었다.이에 전자중이 큰 소리로 울면서 어머니가 끌려왔을 때
금강경을 그만두고 어머니를 위로하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하였다.
나의 생각으로는 금강경의 공덕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으리만큼
큰 것이다.전자중이 신심을 내어 금강경을 외우던 일은 보이지
않는 사이에 저승의 명부(冥府)를 감동시켜 모자간에 서로 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