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8 - 선림고경총서 - 29 - 산암잡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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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게송 짓는 일/축원 묘도(竺元妙道)
스승 축원(竺元妙道)스님은 노년에 천태(天台)자택산(紫籜山)에
한가히 살면서 후학을 가르치는 데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한번은
이런 말을 하였다.
“송을 지을 때는 반드시 사실[事]과 이치[理]가 동시에 갖추어
져야 한다.비유하자면 두 다리가 똑같지 않으면 걸어갈 수 없는
것과 같다.대천(大川)화상의 ‘거미에 대한 송[蜘蛛頌]’은 잘 지었
기는 하나,그 가운데 세 글자는 이치를 표현한 데에는 손색없지
만 사물의 실상은 그렇지 않다.그의 송은 이렇다.
한 가닥 줄을 허공에 걸어 놓고 머무를 때
백억 가닥 엉킨 줄마다 살기가 번뜩이네
상하 사방으로 그물을 얽어 놓고
빠져나갈 수 없을 때 바야흐로 화두가 된다.
一絲挂得虛空住 百億絲頭殺氣生
上下四圍羅織了 待無漏網話方行
마지막 구절의 세 글자 ‘화방행(話方行)’은 거미와는 아무런 관
련이 없는 말이다.
그는 또한 석가출산상에 송을 썼다.
빼어난 자품으로 왕궁을 나오셨다가
까칠한 얼굴로 설봉을 내려오면서
온갖 중생을 모두 제도하겠노라 맹세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