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4 - 선림고경총서 - 29 - 산암잡록
P. 154

154


            뽑아 자기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었다.그 후 절강을 건너 패구
            (貝區)를 지나 광부(匡阜)땅에 오르는 동안 큰스님을 두루 참방하

            고,10년이 지난 후에 다시 수스님을 찾아뵈려고 하였으나 그는
            벌써 입적한 뒤였다.화정사(華頂寺)무견(無見)화상의 도행이 높
            다는 말을 듣고 가슴속에 품어 온 의심들을 말하자 무견스님은

            그에게 ‘개에게 불성이 없다[狗子無佛性]’는 화두를 참구하도록 하
            였는데 마침내 깨친 바 있어 무견화상에게 절을 올리고 그를 은
            사로 삼았다.

               광보살은 일생 동안 절강 양편,여러 사찰의 불상과 보살상을
            매우 많이 조성하였지만 일을 끝마치면 짐을 꾸려 곧장 떠나갔으
            며 보수는 조금도 받지 않았다.노년에 화정사에 돌아와 은거하면

            서 석교암(石橋菴)의 오백나한상을 빚었는데 그 정교함은 극치를
            다하였다.이 일을 처음 시작하던 새벽녘에 자욱한 안개 속에서

            북소리․종소리․범패소리가 가득히 울려 왔으며,끝마친 후에는
            채소밭에 먹을 것이 없었다.광보살은 사람을 보내 시주를 하려
            하였는데,생각지도 않게 영해(寧海)다보사(多寶寺)의 원(圓)강주

            가 채소를 보내 왔다.광보살은 기뻐하며 그 까닭을 물으니,얼마
            전 진보살이 부처님의 명을 받고 그의 절을 찾아와 채소를 시주

            하라고 말해 주길래 보내 왔다는 것이었다.당시 석교암에 진(眞)
            이라는 승려가 있었지만 그는 병으로 몸져누워 오랫동안 문밖 출
            입을 못 하던 자였다.이 사실로 본다면 다보사를 찾아간 사람은

            신인(神人)의 응화였음을 알 수 있다.이 일은 광보살도 생각지 못
            한 일이었다.
               그는 73세에 아무런 병이 없이 화정(華頂)에서 앉은 채 입적하
   149   150   151   152   153   154   155   156   157   158   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