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9 - 선림고경총서 - 29 - 산암잡록
P. 159

산암잡록 下 159


               그는 좋은 인연 만들기를 즐겨하여 길을 닦고 교량을 놓아 주
            는 등 수없이 많은 선행을 하였는데 그가 죽은 후 그 고을 추씨

            (鄒氏)의 꿈에 현몽하였고 태어날 때도 그의 친구가 같은 꿈을 꾸
            었다.그러나 자라나면서 그는 전신이 승려였음을 스스로 알면서
            도 승려들과 사귀기를 싫어하고 목석처럼 어리석고 멍청했다.

               한편 항주 천목산(天目山)의 의 단애(義斷崖)스님은 고봉(高峰)
            스님을 뵙고 깨달아 그에게 귀의한 자가 매우 많았다.그가 죽어
            서는 오흥(吳興)의 가난한 집안에 현몽하여 다시 태어났으며 후일

            승려가 되었는데 그의 법명은 서응(瑞應),자는 보담(寶曇)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장성할 때까지 사람들의 예배와 공양을 받아 보
            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었다.

               내가 천계사(天界寺)에 있을 무렵 보담스님도 그곳에 있었는데,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함께 지내며 그가 하는 일을 살펴보니 여느

            사람과 다를 바 없이 변변찮았고 때론 자신의 내력을 묻는 이가
            있으면 오직 부끄러워하였다.
               이 두 사람의 전신은 모두가 비범한 자들이었는데 어찌하여 전

            생에 익혔던 바를 이토록 깡그리 잊어버릴 수 있을까?옛사람의
            말에 의하면,성문도 오히려 모태에서 나올 때 깜깜해지고 보살도

            생을 바꾸면서 혼미하게 된다고 하였다.그렇다면 수행인이 어찌
            삼가지 않을 수 있으랴!
   154   155   156   157   158   159   160   161   162   163   1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