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1 - 선림고경총서 - 29 - 산암잡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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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암잡록 下 161
환희를 얻게 되면 잡된 시달림이 잠시 사라지고 밝은 지혜가 조
금 나타나게 되지만 그것만으로 다 됐다고 할 수는 없다.무엇 때
문일까?팔식(八識)가운데 아직도 무명(無明)의 뿌리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비유하면 바위 밑에 깔린 풀과 같으니,바위를 들춰내
면 깔렸던 풀이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후
세 학인들은 이 점을 미리 경계해야 한다.
37.불법에 조예 깊은 사대부/왕문헌공(王文獻公)
전조(前朝:元)천력(天曆)원년(1328)천하에서 글씨 잘 쓰는
승려와 유생을 불러들여 항주 정자사(淨慈寺)에 모두 모아 놓고
금가루로 대장경을 쓰게 하였는데 왕문헌공(王文獻公)도 부름을
받고 참여하였다.그는 반드시 대중 승려와 함께 식사를 하였으며
만일 따로 음식을 차려 주면 불쾌히 여겼고,더 나아가서는 팔꿈
치를 끌고 욕해도 먹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나는 지금도 그가 어
느 스님을 위하여 절벽 위의 난초를 그린 그림에 쓴 시가 생각난
다.
간지러운 봄바람 어디엔들 불지 않으랴만
가파른 절벽 위에 몸을 맡김은 무엇을 위함이뇨
그를 따라 스스로 전도망상 피웠으니
절벽에서 손놓을 때를 보아야 하리.
嫋嫋春風一樣吹 託身高處擬何爲
從渠自作顚倒想 要見懸崖撒手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