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5 - 선림고경총서 - 29 - 산암잡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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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암잡록 下 165


               40.흩어져 가는 선방 요사채 분위기



               태정(泰定:1324~1327)초에 선정원에서 가흥(嘉興)본각사(本
            覺寺)의 영석 지(靈石芝)스님을 기용하여 정자사(淨慈寺)의 주지로
            임명하였는데 스님은 당시 84세였으며 모든 이에게 고불(古佛)과

            같은 추앙을 받았다.
               나는 경산사에서 정자사까지 모셔다 드리고 전례에 따라 그곳

            에 방부 들일 수 있었다.당시 그곳엔 500명에 가까운 대중이 있
            었으며 태온(台溫)의 향장(鄕長)충경초(忠景初)라는 자가 본산(경
            산사)의 수좌로 있었는데 나이와 덕망이 높아 많은 사람이 귀의하

            였다.나는 당시 학인의 신분으로 있는 터라 우연히 행랑에서 책
            장수를 만나  장자(莊子)   한 권을 샀다.장주(藏主)의 요사채로
            돌아와 위로실(圍爐室:응접실)에 들어가 장자를 읽으면서 참선공

            부에 지장이 될까 걱정하던 참이었다.마침 충수좌가 외출했다가
            돌아와 매우 불쾌한 뜻을 표하며 정좌한 후 나를 그의 앞에 세워
            놓고 꾸짖었다.

               “그대는 처음 대중 속에 들어와 참선은 하지 않고 도리어 잡학
            (雜學)에 힘쓰는가.게다가 또한 선원의 위로실이란 손님을 맞이하

            고 불법을 논하는 곳인데 이곳에서 외서(外書)를 읽어서야 되겠느
            냐.”
               20여 년이 지난 뒤 다시 정자사를 찾아가 보니 요사채 위로실

            에 나이 어린 승려와 노승이 뒤섞여 거문고를 켜거나 바둑을 두
            거나 아니면 먹물을 핥으며 산수화를 그릴 뿐,외서조차 뒤적거리

            며 읽으려는 사람이 없었다.하물며 참선공부를 하는 자를 찾아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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