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9 - 선림고경총서 - 29 - 산암잡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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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암잡록 下 169


               43.생사는 무상한 것



               형경남(亨景南)이라는 자는 남창(南昌)만씨(萬氏)집안 자손으
            로,어려서 내복산(來福山)단(端)스님에게 귀의하여 백장사(百丈
            寺)여암 우(如菴愚)스님과 용상사(龍翔寺)소(訴)스님의 회하에서

            공부하였으며 선정원의 추천으로 향성사(香城寺)에서 개법(開法)하
            였다.그 사찰은 오랫동안 폐사로 묵어 오다가 일신되었으며,스

            님은 그 후 상람사(上藍寺)로 옮겨갔는데 도풍이 더욱 널리 알려
            지게 되었다.78세가 되던 어느 날 곁에 있는 승려에게 명하여 물
            을 끓여 목욕한 후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편히 앉아 게를 쓰고는

            주장자에 기대 입적하였다.다비를 하니 단단한 사리가 매우 많이
            나왔는데,그의 법손 제성(濟盛)이라는 스님이 주장자와 승복과 사
            리를 거둬 내복산에 부도탑을 세워 갈무리하였다.

               상법시대 이후 행각승들이 어느 곳에 가서 자리를 잡으려 할
            때는 반드시,생사의 일이란 몹시 무상하고 신속한 것이라고 한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구도 정신이 간절한 듯하지만 승적(僧籍)

            을 얻은 후엔 지난날 스스로 노력하겠다던 말을 실천하지 않고
            명리만을 분주히 좇을 뿐이며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오늘날

            경남스님은 임종 때에도 이와 같았으니 평소의 수행을 가히 짐작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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