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2 - 선림고경총서 - 29 - 산암잡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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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도 그것을 한쪽 벽에 던져 놓겠으니 내 생전에 한마디[一轉語]
            를 돌려다오!”

               그리고는 사리를 땅에 던지자 오직 보이는 건 피고름뿐이었다.
            이 이야기는 선배에게서 들은 것이다.




               28.스스로 자초한 응보/장구육(張九六)과 방국진(方國珍)



               원 지정(元 至正)병신년(1356)에 장사성(張士誠)이 소주(蘇州)성
            을 공략했을 때 그의 아우 구육(九六)이라는 자가 맨 먼저 입성하

            여 살 집을 물색하다가 승천사(承天寺)가 그윽하면서도 밝은 것을
            보고서 내심 좋아하였다.그곳을 궁실로 개조하고자 병사에게 법
            당의 불상을 부수도록 하였으나 병사들은 벌을 받을까 두려워하

            여 그 누구도 감히 명을 따르지 않았다.이에 구육이 화가 나서
            불상의 얼굴에 활을 쏘아 맞힌 뒤 다 부숴 버리고 장사성을 맞이

            하여 그곳에 살았다.그 이듬해 정유년(1357)이 되자 명나라의 많
            은 병사가 여구(呂口)의 황태(黃埭)를 공격하니 구육이 병사를 거
            느리고 출전하였으나 패배하여 포로가 된 후 오른팔을 잘리고 죽

            었던 것이다.
               무술년(1358)방국진(方國珍)이 강절성(江浙省)의 분성참정(分省

            參政)이 되어 명주(明州)를 수비할 때였다.그의 좌우사관(左右司
            官)유인본(劉仁本)이 문학을 몹시 좋아하여 평소에 지은 문장과
            시를 편집․간행할 때 성중에 있는 사찰의 장경을 가져다가 이를

            풀칠하여 표지를 만들고 경문을 지워 없앤 후 자기의 시와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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