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0 - 선림고경총서 - 29 - 산암잡록
P. 80

80


            양곡을 관장한 지 일 년이 못 되어 지난날 하던 것이 모두 바뀌었
            다.허수룩하게 낡은 승복은 이제 가벼운 털옷으로 바뀌었고,지

            난날 하던 한 끼 공양은 이제 진수성찬으로 널려졌다.그리고 좌
            우 사람들이 자그마한 계율이라도 범하기만 하여도 성을 내며 스
            스로 일어나 몽둥이로 때리고 그가 땅에 엎어지면 다시 직성이

            풀릴 때까지 실컷 주먹질 발길질을 해댔다.이윽고 사원의 진귀한
            물건들을 모조리 긁어다가 은성(鄞城)민가를 사들여 암자로 바꾸
            고 그곳에 살면서 날마다 재산 불리는 일만을 일삼았다.그러다가

            죽림사(竹林寺)승려들과 가옥관계로 관청에 소송이 제기되어 부
            정이 드러나게 되었고 결국 옥중에서 죽고 말았다.요즘 불문에서
            선을 가장하여 명예를 바라며,부처님의 가르침에 욕을 끼치는 자

            들이 어찌 혁휴암 한 사람에 그치겠는가.
               시전(詩傳)에 의하면,처음엔 잘하지 않는 자가 없지만 끝마무

            리를 잘 짓는 사람은 적다고 하였으니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
            가.
               속담에 의하면,사람에겐 닦아서 얻을 수 있는 복이 있고 연장

            하여 얻을 수 있는 수명이 있다고 한다.인간의 일세(一世)만을 가
            지고 이 속담을 논한다면 근원을 알지 못할 것이며,삼세(三世)로

            확실하게 논한다면 그 근원은 알 수 있겠지만 그 변화는 통달할
            수 없다.변화란 일세가 삼세를 포괄할 수 있고,삼세가 일세에
            실현될 수도 있는 것으로서 삼세인과와 일세인과가 시간적으로

            멀고 가까운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일심에서 짓고 받는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세상 사람 가운데 선행을 하는 자가 도리어 미
   75   76   77   78   79   80   81   82   83   84   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