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8 - 선림고경총서 - 31 - 원오심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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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장자고(張子固)에게 드리는 글



               큰 도는 일정한 방향이 없어 오직 이근종성(利根種性)이라야
            한 번 들으면 천 가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그것은 바깥에서 일
            어나는 것도 아니며 안에서 얻어지는 것도 아닙니다.벗은 말쑥하

            고 끓는 물에 얼음이 녹듯 하여 애초에 얻고 잃음이 없습니다.그
            것은 무릇 중생과 부처가 나뉘기 전,확 트여 밝고 오묘하며 전혀

            기댐이 없이 우뚝 독존하기 때문입니다.다만 한 생각이 반연을
            좇아 이 진실한 바탕을 등져 마침내는 상응하지 않는 많은 업을
            일으켜,환히 밝은 가운데 표류하며 잠시도 쉴 틈이 없게 되었습

            니다.경계에 깊숙이 빨려들어 마음의 근원이 혼탁해져 으레 그런
            줄 여기게 됩니다.보고 듣는 것은 모두가 성색(聲色)을 벗어나질
            못하는데,미혹과 망상으로 스스로를 결박했기 때문입니다.

               큰 해탈을 참구하는 데 이르러서는 아득하고 망망하여 끝을 알
            수 없습니다.식(識)의 물결은 도도하게 넘쳐흘러 잠시도 쉬지를
            않으므로 깨달아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그래도 옛날에 익힌 한

            조각 선업이 있어 기쁘게 살피고 믿어 그것을 구하려 하니 매우
            착하다 하겠습니다.그러나 이것도 엎드리고 참당하여 묻는 데 이

            르러선 다시 깜깜해집니다.그 까닭은 다름이 아니라,버리고 떠
            나 오랫동안 푹 익지 않아서 그러한 것입니다.지금 당장 알아차
            리려 한다면 몸과 마음을 고요하게 하여 마음고동을 모두 물리치

            고 흙과 나무처럼 해야 합니다.그렇게 해서 시절이 도래하면 홀
            연히 스스로 통 밑이 빠지듯 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 본지풍광에 계합하여,맑고 변함없고 청정하고 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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